리뷰/제품

Happy Hacking keyboard, Pro 2 Bluetooth 리뷰.

TechToast 2018. 11. 2. 12:43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주력으로 오래 사용하던 노트북이 VAIO C1 모델이었는데, 작은 사이즈의 키 배치임에도 키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은 키보드의 배치에 매료되었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리브레또, 샤프 등의 미니 노트북을 많이 이용하긴 했지만, 그 이전에는 키 하나하나의 크기가 줄어들어서 불편했던 모델들이 대부분이었고, 이 작은 키보드 배치 안에 실제 키보드의 크기와 동일한 키가 들어 있다는 것 자체가 더 매력적이었다. 그 때 당시에는 (물론 내가 못 본 걸 수도 있지만) 텐키리스, 60% 라는 개념이 많이 전파되기 전의 이야기였다. 



이 오밀조밀하면서도 모든 기능이 다 들어있는 미니 키보드를 PC에서도 사용하고 싶었던 와중에, 해피해킹 키보드를 접하게 되었다. 2000년 초반 당시에 키보드 가격만 2~30만원을 호가하고, Ctrl 키와 방향키, 각종 펑션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여러 가지 이슈들에 대해 '불편함' 이라기보다는 '호기심' 이 더 컸었고, 결국 무리해서 키보드를 구매해서 열심히 쓴 적이 있다. 일반 기계식 키보드와는 조금 다르게 찰캉찰캉거리는 맛이 덜하고, 깊이를 끝까지 다 치지 않고 중간에 인식하는 정도만 키를 누르는, '구름타법' 이라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습하게 되고, 손가락 10개를 전부 다 이용하여 타이핑하는 연습도 열심히 하면서, 정말 말 그대로 '쓸데없는' 컴퓨터 악세사리 놀이에 빠진 적이 있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서른 중반에 내 사무실을 차리는 중에, 키보드를 너무 많이 쳐서 손가락이 아려 문서작업 및 코딩작업을 중단해야 했던 최근 경험을 변명삼아, 다시금 해피해킹 키보드를 들이게 되었다. 네이버 중고장터를 헤매다가, 거의 완전 미사용급인 블루투스 모델을 발견하고는 즉시 운전해서 달려가서, 바로 집어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기분이 덩실덩실하고, 잠깐 쳐 본 키감에 손가락 끝이 짜릿짜릿 한 것이, 이것저것 쓸데없는 변명은 다 집어치우고 문득 다시 그 때의 감성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진 30만원을 호가하는 키보드의 케이스 치고는 조금 서운하다. 뭐, 내가 쓴 돈이 박싱이나 마케팅보다 키보드에 온전히 투자되었다고 좋게 생각하면, 약간은 안도할 수 있는 듯도 하다. 박스가 뭐가 중요해.  ㅇㅇ



예쁘다. 예쁘고 작고 귀엽다.

내가 구매한 모델의 이름은 PD-KB600WN 이다.  일반 Pro2 모델은 400대이며, W 는 흰색, B는 검은색. N 은 각인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인 듯 하다. 

과감하게 백무각을 선택했다. 해피해킹 키보드를 아예 안 써본 사람이라면,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는 키보드 위에서 '내가 누르고 싶은 키의 위치' 를 찾아 헤매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리겠지만, 이미 어느정도 익숙한 나에게는 좀 더 '나만의 것', '나만이 쓸 수 있는 도구' 라는 기대감과 혼자만의 우월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예쁘기도 하고, 나중에 를 하게 될 때 더 수월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PC에 블루투스로 연결하고 메모장을 열어 이것 저것 쳐 보고 있는데, 방향키는 물론 홈버튼 / 페이지 업다운 / Caps lock 기능까지 손가락이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또 사뭇 놀랐다. 몸으로 배운 기술은 참 오래 가는 듯 하다.



기존에 자리에서 쓰던, 원래 연구실의 비품이었는데 아무도 안 쓰길래 쌔벼서 잘 쓰고 있는 애플 유선 풀키보드와의 크기비교. 이 아이도 세로로는 작은 편인데, 일반 풀사이즈 기계식 키보드들과 비교하면 더더욱 작게 느껴진다. 



윗면에 배터리가 들어가는 부분과, 블루투스 및 전원을 연결하는 버튼이 있다.  이 가격대의 키보드의 하우징 치고는 싼티가 나는 것은 조금 실망스러운 부분. 뭐 키보드를 위에서 바라보는 각도에서는 저 부분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실 신경쓰일 부분은 아니지만, 배터리를 넣는 저 케이스의 내구도가 조금 약해 보인다. 부서지면 매우 귀찮은 상황이 일어날 것 같아서, 조심조심 다뤄야 겠다. 


일단 맘에 드는 것은, 아래에 고무 빠킹(?) 이 있어 미끄럼을 방지하는 것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해피해킹 키보드 아래에 저런 부분이 없어, 책상 위에 놓았을 때 미끌미끌해서 구름타법을 할 때 이리저리 밀려다니기도 하고, 무접점 키보드 특성상 놓여있는 책상과 지지하는 재질들에 의해 키감과 소리가 바뀌는 문제가 있었는데, 약~간은 조금 개선되었다는 느낌이 있다. 하도 예전 버전과 비교하는 것 같아서 조금 그렇지만.. 

들어보니, 바로 전 모델 혹은 동급 모델인 유선 Pro2 모델에는 이 고무 미끄럼 방지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 같다. 



DIP 스위치 박스는 유선 모델과는 다르게, 바닥에 배치되어 있다. 이것이 무엇인고 하니, 키보드가 가지고 있는 각종 옵션키와 fn키 조합을 통한 추가 입력에 대한 정보를 변경하는 스위치들이다. 해피해킹 키보드가 특정 OS에 더 좋다고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쉬프트 바로 왼쪽의 '메타키' 를 맥 OS의 command 버튼으로 활용하면 이모저모 편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mac OS 에 더 요긴하게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뭐, 아이맥과 함께 블루투스로 이쁘게 테이블 위에 무선으로만 장식할 수 있는 장점도 있고.

일반적으로 윈도우 유저는 1,3번 혹은 1,3,5번 을 on 하고, 맥 유저들은 2,4 번을 on 해 둔다고 알고 있다. 참고로 on은 위쪽 방향이 on임. 기본적인 것이긴 한데, 막상 뚜껑 따니까 순간 헷갈렸음.


1번, 2번 스위치는 위 이미지와 같은 조합으로 키보드의 fn키 조합을 설정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는 레오폴드 홈페이지. (http://www.leopold.co.kr/)

3번은 엔터키 바로 위의 키를 Backspace 로 이용할 것인지, Delete 키로 이용할 것인지 선택하는 키이다. 난 맥 유저이기도 하지만, 저 위에 키가 딜리트 키인 것은 좀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맥북에도 백스페이스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고. 

4번 스위치는 메타키를 펑션으로 활용하는 키인 듯 하다. 아래 레이아웃에 있는 볼륨 컨트롤 기능을 쓰기엔 편리할 수도 있겠다만, 난 왼손잡이라 별로..

5번은 알트키와 메타키를 교체하는 것이다. 직관적이다.

6번은 Wake-up 키를 쓸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esc 키를 fn 키와 함께 하면 Power / Wake up 키인데, 키보드로 컴퓨터의 전원을 끄거나 켜고, 취침모드에서 해제하는 키이다. 맥용 풀키보드를 쓰면서 제일 불편했던 게 Wake up 키인데, 옵션으로 끌 수 있게 만들어 주니 너무나 다행. 일 하다가 잘못 눌러서 Wake up 키를 누르면, 스르르 컴퓨터가 잠자기 모드로 들어가는 게 은근 스트레스였다.

혹시 몰라서, 6번 스위치를 켜 두고 몇일 지내보고 있다 보니, 조금 다른 기능이었다. PC와의 블루투스 연결이 약 30분 정도 지나면 자동으로 끊기는데, 그 경우에 파워 키가 아닌 다른 키를 눌렀을 때 블루투스를 통해 컴퓨터를 깨우는 기능에 대해서 조절하는 스위치였다. 한 PC에 오래도록 유선마냥 연결시켜 두는 경우에는 매우 쓸모있을 듯 하며, 가지고 다니면서 여러 기기에 붙이면서 사용하는 경우에는, 가지고 다니다가 키가 눌렸을 때 자동으로 연결되고 동작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이 더 큰 듯 하다.




블루투스 모델에서 제일 아쉬운 부분이 바로 이 부분. 뒤 쪽에 Micro USB 로 전원을 넣을 수 있게 하는 포트가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정말 '전원공급' 이외의 다른 역할을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많이 아쉬운 부분. 심지어는 충전지를 삽입하여 배터리를 충전하는 기능이라도 넣어줬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유선으로 연결시켜 주는 컨트롤 박스 조그만거 하나만 넣었으면, 유무선 키보드로 이모저모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었을텐데.. 아직 충분히 검색하지는 못했지만, 웹 상에서 이 부분을 그냥 유선 USB키보드 연결하는 모듈로 개조를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꼭 따라해 볼 예정이다.



위쪽에는 유선 키보드에는 없는 조그만 램프가 하나 있다. 블루투스 기기 특성상 전원 On/Off 를 확인하여야 하고, 페어링 모드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삽입된 것 같다. 배터리가 낮으면 노란색으로 바뀐다고 한다. 아직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써 보지는 않아 확인은 할 수 없었고, 전원을 끌 때 노란색(혹은 주황색) 빛이 반짝할 때 그 색깔이 나온다는 것은 확인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피해킹 키보드를 메인으로 사용한 지 근 한달 째. 손에 충분히 익고, 팔목의 부담이 확실히 덜하고, 다시금 예전의 구름 타법으로 키보드를 치게 되는 것이 느껴진다. 문제점이라면, 다른 자리의 컴퓨터에 앉았을 때 Ctrl 키와 화살표 키를 움직이는 데 어색함이 생겼다는 것. 집에 있는 싸구려 기계식 키보드에서도 맨날 Ctrl C, Ctrl V 를 하여 복사 붙여넣기를 하려고 했지만, 일반 키보드에선 Caps Lock 키이기 때문에 Cv 만 화면에 덩그러니 남는 불상사가 자주 발생한다. 블루투스 모델이기 때문에 집에 가져와서 다시 쓰면 되긴 하지만, 가지고 다니다가 어디 부딛히기라도 하면 어떻해..

키감은 역시, 나에겐 최상급. 리얼포스도 오며가며 얻어 쳐볼 수 있었으나, 접했던 모델이 55g의 키프레스를 가지는 모델이어서 손가락에 약-간 부담이 느껴지는 것이 느껴졌었다. 45g 인 다른 모델을 쳐 볼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그때 다시 비교해볼 수 있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해피해킹 키보드가 제격이다. 

처음에는 Type S 의 묵직하고 조용한 두둑두둑 소리가 더 맘에 들어 그 쪽으로 갈까를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금 와서는 블루투스 모델을 선택한 것도 꽤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키보드인데, 심지어는 선까지 없으니 책상이 매우 정갈해 보인다. 


해피해킹 키보드의 단점은, 아름다운 키캡놀이를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MX Cherry 식 키보드에 맞는 키캡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도쿄프레스 형 방식, 일명 토프레(Topre) 방식으로는 아래 이미지처럼 아름답고 예쁜 키캡이 좀처럼 나오지 않고, 나온다 하더라도 가격이 매우 비싼 편이다. 그래도 가끔 자주 올라온다는 massdrop 사이트(https://www.massdrop.com/)를 계속 기웃기웃 거리게 되었다.


아무튼, 다시금 즐거운 키보드 세계로 들어와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