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앉거나 누워 뒹굴뒹굴 하며 어무니와 느긋한 주일날을 보내는 중에, 얼마 전에 등산을 다녀오는 길에 마트에서 사 두었던 떡볶이 소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열심히 다이어트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지난 주 회식과 결혼식이 여러 번 겹쳐 중간에 잠시 휴식기간을 가졌었다. 에이, 그러는 김에 한번 더 일탈을 해 볼까, 아니면 다음주에 있을 건강검진 전에 다시 한번 타이트하게 다이어트를 시작할까 라는 두가지 마음이 왔다갔다 하고 있던 와중에, 어머니가 고통스러운 멘트를 슥 던졌다.
'밥해줘 아들'
'네.' 하고, 너무나 당당하게 냉장고로 걸어갔다.
지난 주에 사 둔 떡볶이 소스와 떡, 오뎅. 저 다담 떡복이 소스가 매력적이다.
왜 떡볶이 떡이 하나인데, 매콤 떡볶이 소스가 두개냐..
이 소스 하나의 떡볶이 떡 정량이 300그람인데, 마트에서 팔던 떡볶이 떡은 500그람 단위었다. 떡볶이 떡을 남겨두는 것도 처치곤란에, 소스가 모자란 것 보단 소스를 남겨두고 다른 요리할 때 써먹는 것이 공간활용도가 더 좋기 때문이다. 떡볶이 떡은 오래 두면 맛없어지지만, 소스는 밀봉만 잘 해두면 오래 쓸 수 있으니까. 게다가 떡볶이 떡은 다른데 쓸 데가 딱히 없는데, 이 떡볶이 소스는 다른 찜이나 볶음요리 할 때 소소히 써먹을 수 있을 듯 싶었다.
그래서 소스 2개, 떡볶이 떡,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오뎅.
떡볶이에 채소가 너무 수북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별로이다. 게다가, 떡볶이에 양파를 넣으라고 되어 있는데 내가 준비한 채소 리스트에는 양파 대신 마늘이 들어가 있다. 평소에는 양파를 매-우 좋아하지만, 가열한 양파에서 나오는 물이 떡볶이의 소스 맛을 이상하게 바꿔버리고, 떡볶이 소스가 버무려진 양파는 왠지 별로이다. 그래서 채소는 소소하게 준비했다. 준비래봐야 냉장고에 정리된 채소 바구니에서 슥슥 꺼낸 게 다지만.
먹기 좋게 썰어 두는 것은 별거 아닌 일이니까, 슥슥 편하게 썰어 둔다. 너무 잘게 썰으면 별로니까 그럭저럭 큼직큼직하게, 내가 사랑하는 오뎅은 떡을 싸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게. 게다가 떡볶이떡이 100그람 모자르므로, 100그람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게 세 장 정도 넉넉하게 큼직큼직하게 썰어 둔다.
아 못참겠다 한쪽만... 헤헤..
쌀떡은 물에 오래 불려 둘 필요가 없다. 물과 불이 닿으면 금세 말랑말랑해 지니까, 물에 불린다는 느낌 보다는 쌀을 씻는다는 느낌 정도로 소소하게 세척만 해 두면 됨. 우리 기억속에 있는 짧뚱한 밀가루떡은, 하나하나 손으로 다 뜯어야 되고, 물에다 한참 불려야 되고 하는 귀찮음이 있지만, 밀가루 떡볶이의 매력적인 맛이 있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내용이긴 하다.
하지만 난 쌀떡볶이를 먹을꺼야. 왜냐, 마트에서 떡볶이 소스를 집을 때 바로 옆에 쌀떡볶이 떡이 있었거든. ㅇㅋ
귀찮은 사나이의 만능팬. 적당히 깊고, 꽤 두꺼워 열전달 좋고, 공용 뚜껑도 잘 맞는다. 라면, 찌개, 볶음요리, 심지어는 계란후라이까지 한방에 해결. 오늘도 힘써주렴.
썰어둔 재료, 씻어둔 떡볶이를 한방에 다 넣고, 물 머그컵 한잔가득 해서 부어넣고 센불로 끓인다. 소스가 없었으면,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내고, 멸치액젓 넣고, 설탕 고추가루 미림 뭐시기 뭐시기 다 집어넣고 섞고 난리부르스를 해야하지만, 나는 소스를 사왔으니, 사실상 라면 끓이는 일과 다를바 없다.
보골보골 끓고, 넣은 파 마늘 향이 솔솔솔 올라오며, 쌀떡이 말랑말랑 해짐이 느껴지면, 숫가락으로 떡볶이 떡 하나를 꺼내 씹어본다. 음 적당해. 떡볶이 소스를 부어넣는다. 일단 한 팩만 부어봐야지. 맛이 어쩔 지 모르니깐.
음... 음... 음.... 뭔가 색깔이 맘에 안든다. 짜긴 한데, 매콤달콤하진 않다. 음... 하고 턱을 괴고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새 옆으로 다가오신 어머니가, '소스 마저 다 넣어야 겠는데, 떡볶이가 모자르다' 라는 지휘를 해 주셨다.
뭐 그렇다면.
남은 오뎅을 더 썰어넣는다. 오뎅은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한거임. ㅇㅋ. 그리고 남은 소스를 다 붓기는 또 너무 짜 질것 같아서, 소스팩을 열어 절반만 부어넣는다. 다시 색깔을 보고 결정해야지.
음, 색깔 좋아. 국물도 매우 쎈 맛이 난다. 왜 요리하는데 색깔로 따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든 소스가 아니고 만들어진 소스니까 그래도 된다. ㅇㅋ. 이제 오뎅과 떡에 소스를 흡수시켜야 하므로, 잠시 1분간 뚜껑을 덮어준다.
다됐다 호로롤로ㅗㄹㄹ로
우리집에서 제일 맘에 드는 그릇을 꺼내 떡볶이를 담는다. 역시, 500그람과 오뎅한팩을 다 써버리니, 어머니와 둘이 먹기에는 양이 좀 많다. 남은 떡볶이는 식혀뒀다가 락앤락통에 넣어두면, 내일이면 아버지의 손길이 지나간 후에 빈 락앤락통이 설겆이통에 누워있겠지.
아이 좋아. 식탁에 앉아, 순식간에 기도를 마치고 오뎅 한쪽에 떡볶이를 싸서 입에 넣는다. 앗흥, 살찌는맛. 엔돌핀 도는 맛. 매콤깊숙달큼한 맛. 헤헤헤.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떡볶이 소스가 묻은 두 개의 빈접시가 되어 설겆이 통에 놓였다.
오늘도 이렇게 0.5키로의 몸무게를 찌웠다. 괜찮아, 떡볶이 씩이나 먹었으니 등산을 다녀오면 칼로리가 해결이 될꺼..야...
근데.. 왜.. 졸리지..
일어나니, 밤 아홉시 반. 0.5 키로가 찌고 말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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