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기타

결혼식 답례품, 셀프와인 후기.

TechToast 2018. 9. 5. 13:11

사실, 곧 결혼을 한다.

작년부터 교제하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촘촘히 공을 들이고 열심히 마음을 얻으려 노력한 결과로, 올해 초에 프로포즈에 성공했다. 뽀듯뽀듯한 마음으로 상견례도 마치고, 웨딩플래너와 함께 12월 말에 있을 결혼에 대해 하나하나 준비하고 있는 과정이다. 계약한 웨딩플래너가 초청하여 갔던 웨딩 박람회에서, 격렬하게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다른 부스와는 사뭇 다르게 유독히 우리 눈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셀프와인' 이라는 부스였다. 다른 부스의에서 부담스럽게 요구하는 10만원 이상의 계약금과는 다르게, 단돈 만원의 계약금 만을 받고 편안하게 초청하는 터라, 근래에 와인에 조금씩 관심이 생기기도 하고 하여 덜컥 계약하고, 데이트 삼아 찾아가 보았다.

하필, 방문하는 날이 올해 들어 가장 더웠다는 39도를 찍은 바로 그 날이어서, 가고 오는 데 너어어무 고생을 많이 했다. 시음을 해야 하기에 차를 가지고 갈 수가 없어서, 너무 힘들고 더웠던 그날이 더더욱 고생길로 느껴졌고, 추위와 더위에 둘 다 약한 여자친구도 양 볼이 발그레 해진 채로 거의 지치다시피 하여 도착하였다.

주차는 바로 옆 주차장이 있어 가능하다고 하며, 나중에 와인을 수령할 때는 차를 가져가야 할 듯 하다.



시청 광장에서 굉장히 가까운 위치에 있는 약간은 허름한 건물 14층 꼭대기에 있다고 하여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지금까지 걸어오던 주변 경관과는 다르게 갑자기 나름 유럽풍 인테리어가 펼쳐졌다. 이런 위치에 이런 곳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약간은 '쌩뚱맞다' 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단순히 '나름 유럽풍' 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던 게,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등 각 여러 나라의 특색을 한군데 짬뽕해놓은 느낌이어서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_-; 



공간은 생각보다 그리 넓지는 않았다. 방문은 전부 예약제로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 방문하여 실제 완성하고 돌아가는 시간이 1시간 반 여 소요되기에 다른 팀과 겹쳐서 미팅할 일이 없어 딱히 걱정은 없었다. '접객실' 정도의 크기의 이 공간에는 생각보다 볼 거리가 많았다.  Winery 를 상상하게 만드는 재미있는 인테리어들이 눈길을 끌어, 잠시 대기하는 시간동안 재미있는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역시 위에서 이야기한 '나름 유럽풍' 인 인테리어와, 천장에 있는 와인병을 이용한 나름 샹들리에, 그리고 와인통 디자인의 테이블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이전 선배 커플들이 작업했던 와인 샘플들과, 예쁘게 만든 라벨지가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다. 와인의 종류라고 하면 사실 셀프와인에서 직접 만드는 5~6 종류의 와인들이 전부긴 했지만, 무슨 브랜드, 샤토 어쩌구 저쩌구 하는 여러가지 미사여구는, 유일하게 아는 단어 '까베르네 쇼비뇽' 앞에 다 무너지는 정도의 지식을 가진, 아직 '와알못' 인 우리에게는 그 정도의 양도 사실 많은 양이었다. 


사장님과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와인 시음을 시작했다.

시음했던 와인은 총 다섯 종류로, 순서대로 캘리포니아 샤르도네, 까베르네 쇼비뇽, 몬테풀치아노, 리슬링 아이스와인, 카베르네 프랑 을 시음했다. (언제나 '모범생' 캐릭터를 고수하는 필자에게, 이런 정리된 내용은 언제나 환영이다.)

캘리포니아 샤르도네는 일명 스타터(Starter)이라고 불리는 식전 와인으로, 9 ~ 10 도를 가진 상대적으로 도수가 높지 않은 화이트 와인이었다. 새큼새큼하고 깔끔한 맛을 가지고 있고, 향은 생각보다 별로 없는 편이어서 음식을 먹는데 방해되지 않는 정도의 맛이었다. 마시고 나서 혀끝에 남는 살짝의 비린 맛이 매력적이었다. 달달한 맛의 술을 사실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생각보다 괜찮게 다가왔던 것 같다. 

까베르네 쇼비뇽은 사실상 뭐 프랑스 와인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으며, 식사와 같이 마시는 것이 좋은 레드와인이며, 달달한 경우도 있고, 탄닌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가서 적당히 바디감도 있는 와인이었다. 우리 같이 결정장애에 휩싸여 있는 커플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딱 중간', '딱 적당' 이라는 단어가 적합한 와인이었던 것 같다. 기름진 음식들에 상대적으로 잘 어울리며, '집에 가서 삼겹살과 함께 드세요' 라는 사장님의 한마디에 큰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웠다.

세번째 몬테풀치아노 라는 와인은, 내 스타일이라고 하기엔 좀 너무 진했다. 도수도 다른 와인 대비하여 높은 도수였고, 떨떠름한 맛도 강했으며, 사장님의 표현방법으로 '강한 바디감' 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기름지고 밀가루 위주인 이탈리아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이라고 하며, 깔끔한 오일 파스타와 함께 먹으면 괜찮을 법도 했지만.. 지금 이렇게 여러 종류의 와인을 깔아두고 함께 먹는 사이에서는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뒷맛이 전혀 없이 정말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끝향이었다. 기름진 입을 씻어주는 느낌의 와인이라고 표현하면 맞았을 지 모르겠다. 스시 한점 먹고, 다음 스시를 먹기 전 얇은 생강 한장 먹었을 때의 깔끔함의 정도였다. 그런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

네번 째 리슬링 아이스와인이, 우리에게는 사실 주인공이었다. 바로 얼마 전, '도망치는건 부끄럽지만 도움이된다' 라는 일본 드라마에 잠시 출연한 아이스 와인에 너무 매력을 느껴, '저거로 해야겠다' 라고 사실상 마음을 먹고 왔었어서 그런지, 평소에 그리 썩 좋아하지 않던 살짝 달달한 맛의 와인이었는데도, 12도 정도의 적당한 알콜 도수와 식후 디저트 와인의 특성상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 몇 병 쟁여두고,  느긋한 저녁식사 후, 치즈케이크 반 조각, 과일 몇 점과 함께 사부작 한 잔 정도를 기대하게 만드는 와인이었다. 다른 와인병들 보다 슬림하고 예쁘게 빠진 병 모양에도 역시 큰 가산점이 있었다. ㅋㅋ

그 와중에 복병이 있었으니.. 마지막 선택지였던 카베르네 프랑이 생각보다 너무 큰 만족도였다. 조금 더 달달했으며, 조금 더 진했고, 알게모르게 올라오는 장미향과 블루베리향이 너무 매력있게 다가왔다.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장미향과 딸기향이 다 섞여 있어, 슬금 여자친구의 눈빛을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폭발할 정도로 반짝반짝 하고 있었다. '우리의 오늘 선택지는 이것이겠군' 이라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셀프와인의 계약 단위는 30병 단위이다. 와인 재료로 이용되는 포도의 단위가 약 30병 정도가 나오는 양이기 때문에, 적어도 한 종류의 와인을 30병 정도는 제작해 주어야 계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연신 이런 조건이 들어가 있어서 정말 죄송하다며, 조건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 주는 사장님의 열정이 느껴져서 자연스레 끄덕끄덕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답례품 목표 병수도 거진 60병 정도를 생각해 온 우리로서는 그 정도는 큰 대사의 일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두 종류의 아이스와인이 둘 다 맘에 드는 우리 상황에서, 이를 어쩌나.. 하고 한숨쉬고 있었는데, 좋은 절충안이 떠올랐다. 20병은 리슬링으로 하고, 한 35병 정도는 카베르네 프랑으로 선택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장님은 옳타구나 하며, 그런 방법으로도 많이들 선택하신다고, 토탈 30병만 넘는다면 몇 병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무리없이 커버해주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스무스하게 계약서를 쓰고, 본격적으로 제조에 들어갔다. 남자분은 팔이 좀 아플 것이므로 준비하라는 사장님의 으름장에 조오금 겁을 먹고, 네 걸음 정도 가면 있는.. 정말 '바로 옆' 인 제조실로 이동했다. 걱정거리와는 달리 생각보다 그리 할 일은 많지 않았다. 미리 준비된 흰색 커다란 '다라이' 에다가, 옆에 붉은 색 박스를 열어 비닐봉지에 잘 뭉개져 담겨 온 포도 원액을 하나 끙차 들어 찢어 붓고, 독소 제거 및 수분기 제거를 위해 어디선가 가져온 벤토나이트 봉다리를 찢어 가루를 부어 넣은 후, 열~심히 휘저은 후에 이스트를 위에 뿌려주면 사실상 끝이다. 와인이라는 게 사실 원 재료만 생각하면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고, 들어간 물과 포도의 맛이 사실상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리곤, 조그만 노 같은 도구를 풍덩 담아, 시계 방향 반시계 방향으로 바꿔가며 열심히 저어, 거품층을 5센치 이상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래야 벤토나이트 가루가 포도원액을 잘 분해하고 독소를 끌고 가기에 수월하며, 이스트 혹은 효모 가루 가루가 들어가서 알콜 발효 작업이 시작되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냥, 단순히 젓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뭐 그렇게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라고 패기있게 쓰긴 했지만, 거진 8~10분 가량 포도통을 열심히 휘젓고 있으니, 이마와 등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 부끄러워라. 그래도 젓는 재주가 있다며 사장님이 살근살근 칭찬해 주시니, 진짜인지 아닌지는 무관하게 기분은 조금 좋았다.




그리곤, 뒷편의 와인 숙성실 한 군데 밀어넣으면, 사실상 우리가 방문해서 할 만한 모든 일은 끝이 난다. 흰색 '다라이' (다른 단어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를 우루루 밀고 들어가 보니, 숙성실 안은 생각보다 예쁜 광경이었다. 다른 팀이 진행했던 와인들이 시간을 들여가며 녹녹하게 익어가고 있었으며, 그 병의 색색깔이 매력적으로 비추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렇게 큰 통에 담궈두고 계속 숙성실에 놔두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숙성도가 높아져서 각 병에서 숙성되는 것보다 맛의 밸런스와 향이 더 깊어지기 때문에, 미리 60병 분량을 담궈 놓고 실제 답례품으로 출고할 때 30병 정도만 담아가고 나머지는 나중에 찾아가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한다. 은근 술을 잘 하는 와이프를 곧 두게 될 나에게 생각보다 솔깃한 방법이었다. 일단 이번 배치를 한번 만들어 맛본 후에, 맘에 들면 나중에 다시 한번 데이트삼아 와서 만들고 가도 즐거울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이 이야기 하시기를 '남는건 사진' 이라며, 폰 한개를 뺏어가시곤 만드는 과정을 조목조목 사진으로 찍어주셨다. 외모에 썩 자신이 없는 나와 달리, 어떤 각도에서 찍어도 아름다운 내 여자친구 덕에 그나마 사진이 조금 살아나는 듯 하여 매우 다행이다. 후후후.



밖에 나와서 잠시 휴식 하는데 뒤에 있는 와인 셀러가 눈에 띄여, 만지작만지작 하며 구경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사장님이, '계약 병수 누적 100병이면 이 셀러를 선물로 드리고 있습니다' 라고 하셨다. 우리가 이번에 55병 계약했으니, 나중에 여유있을 때 다시 45병 정도 계약하면 저 와인셀러를 집에 가져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군. 아기 첫돌 이라던지, 결혼기념 5주년 정도 라던지, 적당한 기억에 남는 기간에 다시 찾아오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커지는 계기였다. 역시 유혹 중의 유혹은 물혹이 최고구나.

기본적으로는 부직포로 된 와인 봉투가 같이 나가지만, 조금 더 소중한 분들한테는 별매중인 예쁜 종이 박스를 이용하여 포장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이야기한 드라마에서도 종이박스와 함께 선물받는 장면이 나왔기도 하고, 박스를 눈으로 보니 은근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바로 옆의 무슨 상패가 들어있을 듯 한 케이스는 들여놓으시고 사실 잘 안 나간다고, 가격이 좀 나가는 편이라 정말 꼭 중요하신 분 아니면 하지 않으시는 것도 좋다는 다소 현실적인 조언도 곁들여 주셨다. ㅋㅋ





사실, 결혼식 비용을 열심히 이모저모 줄여도 마땅치 않은 요즘 트렌드에 '답례품' 이 웬말이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둘이 직접 손으로 무언가 만들었다는 느낌과, 너무 연말에 잡은 결혼식 날짜 특성상, 감사하게 와주신 분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더 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어 선택하게 되었고,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보고, 완성품도 만져보며, 맘좋고 쾌활하신 사장님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것이 더더욱 즐거움이었다. 무언가 알찬 데이트를 한 느낌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도였다. 

나중에 완성된 와인을 보면, 이 때 즐거웠던 하루가 온전히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그렇게 더웠던 날의 저녁, 밖에 나와서 보는 청계천의 하늘은 그렇게 이뻤다.




지원 받은 거 없음.  다 내돈 내고 함.